직장에 대한 생각

쌓이는 노동과 소모되는 노동

양노노 2026. 3. 6. 16:01

일을 그만둔 지 한달 반이 지나갑니다.

이제 일을 좀 하고싶어요.

흠칫;

'일을 해야겠다'가 아니라 '일을 하고싶다'라니?

일을 그만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는데 말이에요.

우리는 정말 일을 그만두고 싶은 걸까

 

최근 리멤버에서 직장인 1,022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무려 64.3%의 직장인이 이렇게 응답했다고 합니다.

평생 쓸 돈이 생긴다 하더라도

일을 지속할 것이다.

저도 같은 입장이긴 한데, 제가 소수인 줄 알았거든요.

왜 한때 FIRE족이 유행해서 방송에도 나오고 책도 나왔잖아요.

이 괴리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요?

사람들은 정말 일하기를 싫어하는 걸까요?

직장생활에서 느끼는 결핍

 

조사 결과를 자세히 보면,

응답자들이 현재 직장생활에서 느끼는 결핍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 보상: 33.1%
  • 성장, 일의 의미, 기회: 52.5%

그리고, "커리어 하이"에 대한 기대도 과거와는 달랐습니다.

더이상 임원을 목표로 일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비즈니스 리더: 20.4%
  • 덕업일치: 24.0%
  • 압도적 실력으로 인정받는 독보적 권위자: 23.9%
  • 실력으로 자율성을 획득한 인디펜던트 워커: 19.1%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는 거죠.

이왕 일을 할 거라면

의미 있는 일, 전문성있는 일을 하고 싶다.

쌓이는 노동과 소모되는 노동

 

혹자는 '돈'의 성격을 두 가지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어떤 돈은 쓰는 순간 사라지는 돈이지만,

어떤 돈은 부동산이나 주식처럼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는 돈이죠.

'일'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는 것 같아요.

  • 어떤 노동은 사람의 가능성을 축적시키지만,
  • 어떤 노동은 사람의 에너지를 소진시킵니다.

쌓이는 노동

내가 좋아하거나 의미있다고 생각해서

하면 할수록 경험과 전문성이 생기고

점점 선택지를 넓게 만드는 일.

소모되는 노동

월급을 받기 위해 억지로 버티면서

단순히 시간과 임금을 교환하게 되어

임금 말고는 남는 것이 없는 일.

사회초년생때는 '소모적인 노동'을 할 수밖에 없더라도,

점차 영역을 옮겨 '쌓이는 노동'을 할 방법을 찾는 것이

일의 세계에서 자아를 찾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자아실현의 방법이 '일'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훌륭한 회사는 '학교'와도 같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회사가 학교야?

기업은 영리가 목적이고 그래서 근로자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사견으로, 좋은 일자리는 '학교'와 유사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수업을 준비해서 가르치라는 건 아니지만,

수준에 맞는 과제를 부여함으로써 실력을 키우고,

이를 평가하고 보상함으로써 동기부여한다는 면에서요.

실제로 '저성과자 통상해고' 관련 판례를 보면

법원은 마치 '기업-직원' 관계를 '학교-학생'처럼 여기는 것 같습니다.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인지는 근로자의 지위와 담당 업무의 내용, 그에 따라 요구되는 성과나 전문성의 정도, 근로자의 근무성적이나 근무능력이 부진한 정도와 기간, 사용자가 교육과 전환배치 등 근무성적이나 근무능력 개선을 위한 기회를 부여하였는지, 개선의 기회가 부여된 이후 근로자의 근무성적이나 근무능력의 개선 여부, 근로자의 태도, 사업장의 여건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대법원 2023. 12. 28. 선고 2021두33470 판결

계약서에 별도의 내용이 없더라도,

성과를 이유로 근로계약을 해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교육''개선기회'를 부여하라는 겁니다.

직장생활에 던지는 질문

 

그러므로,

월요일만 되면 병에 걸린게 아닌가 의심될 때,

진짜 고민해야 될 질문은 '퇴사'보다도 '일의 종류'라는 겁니다.

당신이 근로자라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소모되는 노동'인가요?

아니면 조금 힘들더라도 '쌓이는 노동'인가요?

혹은 사용자라면,

지금 제공하는 일의 종류가 어떤 것에 가까운가요?

일의 종류를 전환하려면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요?

어쩌면 사람들은 일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소모되기만 하는 노동을 기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